자기만의 학교 1: 자유님의 학교
우리가 흔히 학교라고 부르는 제도적 틀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알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면 학교가 될 수 있다. "기분 좋은 충돌"이 바로 그런 실험이고,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학교의 가능성을 매번 보고 있다.

자유님의 학교: 기분 좋은 충돌
지난 6월부터 2주에 한 번씩 양재천 앞에 있는 기분 좋은 충돌이라는 공간에서 "기분 좋은 글쓰기"라는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8월의 두 번째 모임에서 쓰는 중이다.
격주 토요일 아침에 모여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공유하고, 짧으면 2시간 길면 3시간 정도 글을 쓴다. 글을 쓰다가 중간 상황 공유를 하면서 목표에 얼만큼 다가갔는지, 쓴 내용은 무엇인지, 또 쓰면서 어떤 새로운 생각을 했는지 등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그런 뒤 다시 조금 더 쓰는 시간을 가지거나 점심을 먹고 다시 쓴뒤 헤어진다.
기분 좋은 충돌에는 기분 좋은 글쓰기 외에 다른 프로그램도 많다. 아침에 모여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 좋은 아침", 한 달에 한 명의 감독을 주제로 모여서 영화를 보는 "기분 좋은 영화", 말그대로 모여서 달리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 좋은 달리기", "기분 좋은 공부" 등등.. 온라인 공간인 디스코드가 있어서 다른 프로그램도 구경할 수 있다.

이렇게 설명을 하다보면 기분 좋은 충돌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여럿이 모여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다. 여럿이 모여서 어떤 주제에 대한 공부를 하거나 각자의 결과물을 만든다. 이것이 당연한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혼자서 공부나 작업을 하는 게 좋거나 익숙한 사람들도 많다. 여기서는 사람들과 만나는 게 중요하고 그래서 오프라인 공간부터 만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부터 '기분 좋은 충돌'이잖아요.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 혼자하는 건 옵션이 없었고, '충돌'이 일어나는 게 이 공간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소개할 때 어떻게 소개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왜냐면 '달리기를 한다', '영화를 본다', '글쓰기를 한다'는 활동이 중요하기 보다는 그 활동을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 나와 도환이가 보고 싶은 사람들, 그들이 만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은 아주 작은 핑계 같아요.
그리고 모여서 하는 글쓰기/달리기/공부 같은 행위 자체 뿐 아니라 그걸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내가 배운 것, 느낀 것, 감정, 무언가 하다가 바뀐 생각 등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고 그것이 특정 행위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지난 두 달 간의 글쓰기에 대한 스스로의 회고를 나누고 앞으로의 목표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것이 글쓰기 자체만큼 이 시간의 핵심이라고 느낀다.
이렇게 어떤 프로그램이라는 틀을 만들고, 모여서 함께 이야기하며 자기만의 결과물이나 시간을 꾸려가는 모습이 나에게 학교를 떠올리게 했다.
우연한 배움의 장으로써의 학교
내가 생각하는 학교의 본질적인 가치는 구조화된 교육 과정을 따르는 형식적인 학습(formal learning)* 안팎에서 일어나는 무형식적인 학습(informal learning)이다. 무형식적인 학습은 친구와 나눈 짧은 대화, 동아리 활동 등에서 알게 된 협력 방법 같은 것들이다. 돌아보면, 학교에서도 시험과 성적과 관련이 없는 상황에서 배운 것들이 내게 더 오래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기분 좋은 충돌에서의 시간도 비슷하다. 프로그램은 글쓰기를 위한 형식을 제공하지만, 그 시간에 이뤄지는 대화와 공유, 예상하지 못한 연결을 발견할 때 내게 정말 중요한 배움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지난 번 모임에서 이야기 하면서 나는 자유님의 글쓰기 방식과 조앤 디디온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배우게 됐다.
*형식 학습은 구조화 되어있고 국가에 의해 인증이 되는 학력이나 자격이 결과물로 주어진다는 특징을 가진다. 또, 강의를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학습의 통제권이 가르치는 사람에게 있다. 반면 무형식적인 학습은 일상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학습을 뜻하고 강의실 밖의 잘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학습의 통제권이 학습자에게 달려있다.
나는 형식 학습만으로도, 무형식 학습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형식을 만들고 그 틀 사이에 생기는 비의도적이고 우연적인 배움과 만남, 그리고 자기 학습(self-learning)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사람이자 배우는 사람이 되기
자유님이 이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 만든 학교의 교장이자, 선생님이자, 학생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것을 공부하기 위한 과정을 스스로 기획하는 것이다. 먼저 자신이 알고 싶은 주제나 키워드를 계속해서 찾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든다. 프로그램에 대한 대화는 다른 프로그램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한다. 곧 프로그램을 함께할 사람들이 모인다.
이렇게 학습을 직접 설계하면 단순히 배우는 주체가 되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깊은 공부가 된다. 스스로 학습 목표를 정하고, 그 사이의 우연적인 학습이 일어날 수 있는 틈을 만든다. 글쓰기 모임을 기획한다고 했을 때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어떤 형식으로 글을 쓰고 공유할지, 어떻게 서로의 피드백을 나눌지도 설계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글쓰기를 배우는 동시에 학습 환경을 만드는 방법도 배우게 된다. 혼자 하는 공부가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배움이다.
인터넷 덕분에 '누구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거기에 크게 동의하지 않았어요. 잘 모르는 분야에서는 뭘 검색해야 하는지도 모를 수 있잖아요.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unknown unknown)에서는 사람을 만나서 뭔가 새롭게 알게 되는 게 가장 효과적이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지적 충격을 떠나서도 단순히 여길 만들었을 때 '작업실'이라고 불렀거든요. 근데 막상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떠올렸을 때 계속 "여기에 누구를 데려오고 싶고, 누구를 초대하고 싶고~"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연결'이나 '유대' 같은 것도 후보에 있었는데, '충돌'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좀 더 지적 충격이 발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집에 돌아가서도 그 충격이 생각나고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길 바랬어요.
'지적 충격'이 제 행복에 큰 기여를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 지적 충격으로 받은 부산물을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몇 년 지나면서 그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더 자주 발생시키는 게 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흔히 학교라고 부르는 제도적 틀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알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면 학교가 될 수 있다. "기분 좋은 충돌"이 바로 그런 실험이고,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학교의 가능성을 매번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