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해서

'내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꺼내 그 실에 실어, 타인들을 향해 전류처럼 흘려 내보내는 경험.'

가끔 사람들이 내게 좋아하는 글쓰기를 직업으로도 하는 건 어떻냐고 물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일로 하는 글쓰기와 그렇지 않은(?) 글쓰기가 너무 달라서 잠깐 당황한다. 그리고 새삼 두 가지가 비슷한 일로 보일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는다. 짧은 순간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두 개가 좀 다르긴 한데.. 그렇긴 하죠.'라고 대강 답변한 적이 많았다.

내게 문장을 다루는 일은 아마도 익숙한 것 같긴 하다. 단어를 고르고, 서술어를 이리저리 고치고, 흐름이 있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나름대로 재밌다. 실용적인 글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일을 할 때는 (그래야만 하기도 하지만)꽤 확신을 가지고 문장을 만들고 고친다. 거기에는 기능적인 즐거움과 고유하고 정해진 리듬이 있다. 다만 일 바깥의 글쓰기, 특히 산문을 쓰는 것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마음과 정신의 완전히 다른 영역을 사용한달까. 마치 설거지와 달리기처럼 말이다. (사실 몸을 쓰는 방식마저도 다르다.)

<빛과 실>

오후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과 에세이를 엮은 <빛과 실>을 읽었다. 눈을 감았을 때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을 설명하는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누구나 눈을 감았을 때 눈꺼풀 사이로 보이던 그 빛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 빛은 따뜻한 생명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글(실)로 이어지며 폭력의 반대편에 서서 생명을 지켜왔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한강 작가에게 글쓰기는 사랑이고, 생명을 지키려는 노력이고, 그걸 위해 다른 사람에게 언어라는 실로 연결되는 일이다.

전문을 다 실을 수는 없지만 '빛'과 '실'을 엮은 이 이야기가 무척 좋아서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음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동안 나는 글쓰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별로 믿지 못했던 것 같다. <빛과 실>을 읽고 나서 문득 2년 전 발행하던 뉴스레터에 썼던 글쓰기에 대한 글이 생각나 읽어봤다. 그 뉴스레터의 제목은 <얇고 투명한 겹겹의 기쁨>이었는데, 글쓰기를 할 때 내가 느끼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을 표현하려 애 쓴 기억이 남아있는 제목이다. 매순간 확신이 들지 않아 연약하게 느껴지는 단어와 문장을 쌓으면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투명한 빛. 시작할 때는 아주 막막하고 아무것도 없는 낯선 들판에 서있는 기분이지만 문장을 잇고 내면의 길을 찾아나간다. 이 막막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기능적인 영역과 완전히 분리된 채 요령없이 시간을 보낸다. 나의 질문과 고민과 감정을 온전히 표현해 보려고 애쓰며 보내는 이 시간이 마치 기도하는 시간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개인적인 기도와 같은 글을 사람들과 뉴스레터로 나누는 스스로가 종종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발행하고 있었던 건 아마 나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나 싶다.

쏱아지는 빛발을 보며,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느끼며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문학을 읽고 써온 모든 시간 동안 이 경이의 순간을 되풀이해 경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어라는 실을 통해 타인들의 폐부까지 흘러 들어가 내면을 만나는 경험. 내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꺼내 그 실에 실어, 타인들을 향해 전류처럼 흘려 내보내는 경험.

– <빛과 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중

연결되는 글쓰기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과 세계의 의미를 어떻게든 붙들고 싶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에는 그 어떤 의미도, 질서도 없죠. 하지만 거기서 무언가 이야기를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 그런 무작위적인 사건에서 어떤 의미나 서사를 발견하려고 애쓰는 일(엘리슨 벡델)"로써 말이다.

나 개인의 내면 깊숙히 들어가면서도 타인과 연결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아직 조금 아리송하지만 이 질문에 답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 글이 문득 떠올라 붙여본다.

앙 기모띠 수업
얼마전에 &#x27;앙기모띠&#x27; 수업을 간단히 언급한 글에 지도한 내용을 좀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는지…
고생스러워도
4월부터 한연이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나오고 있다. 친구들을 대면하는게 힘들다고 하여 모두 하교…

어쩌면 일상을 붙들기 위한 글과,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글이 완전히 다르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햇빛이 잎사귀들을 통과할 때 생겨나는 투명한 연둣빛이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특유의 감각이 있다. 식물과 공생해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리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이다.

– <빛과 실>, '북향 정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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