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학교 2: 나의 중학교

제1회 스쿨오브락 가요제 시작 장면

내게 남은 중학교 때 친구들은 단 두 명이다.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나는데, 올 여름에 만났을 때 친구가 혹시 카더가든 유튜브에 우리 학교가 나온 걸 아냐고 물었다. 락 밴드가 학교에 가는 썸네일을 본 것 같긴 한데.. 도대회 1등도 하고 엄청 잘한다고, 그 콘텐츠도 무척 잘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학교에 밴드부가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별생각없이 집에 가서 우리 학교 밴드부가 나온다는 영상을 틀었다. 일단 교복이 저렇게 세련되게 바뀌었는지 처음 알았다. 정말 연주와 노래를 잘하는 멋진 친구들이었다. 이 영상을 시작으로 새벽 5시까지 이 콘텐츠 시리즈를 모조리 보게 됐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는지 그냥 무언가가 좋아서 열심히 하는 모습, 교복을 입고 무언가를 해보고 설레어하고 낯설어하고 해내는 모습이 전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년 말에 '제1회 스쿨오브락'이라는 공연을 열어 콘텐츠에 나왔던 모든 학교 밴드를 초청해 축제를 연 콘텐츠를 재생했다.

근데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기시감이 들었다. 축제가 열리는 곳이 우리 학교였다. 내가 급식을 먹으러 친구들이랑 뛰어가던 길, 바로 옆에 붙어있던 고등학교 건물 같은 것들이 너무 익숙했다. 졸업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학교 경관이 나오자 어딘지 너무 알겠어서 그리움인지 반가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리고 내가 아는 강당이 보였다. 무척 예쁘게 꾸며져 있었지만 저기서 조회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체육을 하던 기억 덕분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학교 강당이 어디나 비슷하게 생겼다고 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다르다고 느낀 건 내가 중학교 때 저곳을 무대로 만들어 본 기억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를 만든 기억

중학교 2학년 때 어쩌다 학교 축제를 직접 기획하게 됐다. 선생님들이 축제 기획을 하는 분들에게 몇 주 동안 축제 기획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사실 그때는 그게 뭔지 잘 모르고, 누가 만들어 준 시간인지도 잘 모른채 그냥 참여했던 것 같다. 다만 학교 안에서 규칙이나 지시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자율적으로 할 기회가 생긴 게 처음이라 낯설고 신기했다.

매일 수업이 이어지고 교복입은 애들로 가득 찬 학교가 텅 비어 있는 시간에, 한 교실에 10명 정도가 모여 축제 기획에 대해 배웠다. 이론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20대 정도로 보이는 어른들이 열정적으로 우리에게 뭔가 알려주고, 같이 교실 바닥과 복도 바닥에 앉아서 전지를 펴놓고 브레인스토밍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뭘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끼리 진짜로 축제를 만들어야 할 때가 왔다. 어떤 컨셉으로 할 지 토론하고, 무슨 프로그램을 할 지 고민하고, 축제 당일의 큐시트를 짰다. 심지어 축제 기획단 옷도 맞췄는데, 직접 수선을 하러 각자 세탁소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축제날이 왔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댄스동아리 친구들이 동방신기 춤을 멋지게 췄고,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진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뭔가를 열심히 준비했고, 그것에 학교 전체가 참여했다는 것, 그리고 잘 마무리 되었다는 감각이 생생하다. 내 안에 스스로도 가늠 안되는 규모의 뭔가를 스스로 해낼 수 있고, 같이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깊이 박힌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 늘 마음 한구석에서 작동했던 것 같다. 중학교는 나에게 그런 소중한 흔적을 남겼다.

중학교 때 축제를 만들어봤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는 당연히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수적인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하는 축제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선생님들과 언쟁을 해가며 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결국 실제로 진행했다. 낯설고 신기했던 경험은 곧 당연한 일이 됐고, 다른 학교에도 변화를 만들 수 있게 해줬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이 경험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저 강당으로 들어가는 한 선생님의 뒷모습이다. 초겨울이라 점퍼를 입고 계셨던 것 같고, 뒷모습과 발걸음에서 설렘과 긴장이 느껴졌다. (선생님은 보통 명랑하셨지만 가끔 혼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땅을 보면서 걷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 갑자기 사색에서 빠져나와 강당 문 구석에 뭔가 학생들에게 위험한 건 없는지 확인하시던 모습까지. 축제를 만들 때 항상 곁에서 같이 해주셨던 선생님의 그 모습이 왜 기억에 남아있을까 생각해보면 그 순간은 정말로 우리끼리만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2학년 때의 기억

선생님은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유일한 친구 두 명도 그때 같은 반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다. 쉬는 시간마다 말뚝박기를 하고, 매점에 뛰어갔다 오고,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고, 서로 말도 안되는 걸로 매일 배아프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과의 관계 속 즐거움 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다른 기억들도 유독 많다. 아직 격주로 놀토를 하던 시절, 학교에 오는 토요일에 하던 '사랑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나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방송을 하고, 우리는 그걸 들으면서 사랑의 대화장에 내가 요즘 하는 생각들을 적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담임선생님이 걷어 거기에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 돌려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저 귀찮았고, 선생님의 코멘트도 중요하지 않았고, 방송도 그냥 지루한 선생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넘겼던 것 같다. 당시 선생님과 같은 나이가 되고, 또 직장인이 된 지금 돌아보면 도대체 어떻게 이걸 전부 하셨는지 모르겠다. 성인이 되고 가지고 있던 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본 그 노트에는 창피한 얘기들이 가득했고, 선생님의 코멘트가 너무 따뜻하고 관심으로 가득해 놀랐다. 그땐 촌스럽다고 생각한 이 프로그램의 이름이 실로 얼마나 직관적이었나 생각하면 웃게 된다.

또, 여름방학이 시작할 때 했던 학급 야영도 빼놓을 수 없다. 학교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일본 공포 영화를 보고, 교실에서 배깔고 빙 둘러 누워 진실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도 생생한 그 모든 장면과 소중한 기억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이 있었으리라는 걸 이제야 조금이나마 가늠해본다.

20년 만에 만난 선생님

이런 감사함을 전하고 싶기도 하고 그저 그리운 마음에 갖고 있던 선생님 연락처로 무작정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 늘 나중에 술 한 잔 하자고 했던 선생님과의 약속을 20년 만에 지키게 될 줄은 몰랐다. 선생님도 같은 추억을 떠올리셨는지, 당시 학급 야영 계획표를 출력해 들고 오셔서 무척 감동했다.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 하며 내가 왜 학교라는 주제를 아직도 계속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읽을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좀 더 알 수 있었다. 그건 내가 규율과 억압으로 대표되는 학교 안에서 다른 모습의 학교를 꽤 경험할 수 있었던 운 좋은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운은, 그렇게 다른 모습의 학교를 만들기 위해 분투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덕분이다. 겁이 많고 성취욕이 높아 10대 내내 모범생이긴 했지만, 실은 교과 성적과는 상관 없는 것들이 인간으로써 나를 성장하게 한다는 걸 내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다같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라든가, 가출한 친구를 무조건 혼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돌보던 선생님들의 모습, 축제 기획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누리고 해냈던 학교에서의 순간들이 한 사람이 되어 내 안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는 동료분들과 함께 쓰신 <학생자치를 말하다>에 잘 담겨있다. 책에는 선생님이 왜 이런 선생님(!)이 됐는지 알 수 있는 어린 시절 꿈 이야기부터 학생들과 함께한 생생한 일화와 고민, 동료 교사 간의 우정과 동료애가 빼곡히 적혀있다. 들어가는 글의 첫 문장부터 참 좋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행복할까? ... 저희는 지난 10여 년간 학교 현장에서 학생부(생활인권부)와 학생자치, 동아리 담당 교사로 근무하며 아이들이 자유롭고 스스로 결정하여 행동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또 아이들을 일방적인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선생님들은 학교에서도 어떤 순간에는 아이들이 분명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온 나도 거기에 100% 공감한다.

책에는 우리가 만든 축제 이야기, 그리고 그 기반이 된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혀있었다. 나는 사실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한 학생은 아니었고 크게 관심도 없었는데 책을 보면서 동아리 활동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선생님이 왜 그렇게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지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힘들어 하는 아이,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아이, 성적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껴안고 있는 아이... 그래도 기타 연주라는 취미를 통해서 자신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통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살아갈 용기를 심어준다.

학교와 사회

보통 ‘학교’를 좋아한다고 하면 당연하게도 공감을 못받았다. 다들 좋지 않은 기억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치만 그것을 압도적으로 상쇄하는 좋은 경험도 내게는 많았다. 앞에서 썼듯, 운이 좋았다. 이런 내 중학교 때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이제야 왜 네가 학교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어른들을 잘 신뢰하고 관계맺을 줄 알았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나도 그게 어디서 비롯됐는지 이제야 더 잘 알게 됐다.

나는 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학교에서 변화를 만들 수는 없지만 내가 누렸던 것들이 사회의 변화와 함께했음을 이해하고, 그 변화에 도움이 되고 싶다. 아직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경험한 것들을 글로 먼저 남겨둔다.


선생님이 갖고 계셨던 꿈은 쉽게 변하지 않는 학교에서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실현됐다. 덕분에 나같은 기억을 가진 아이들이 이제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서로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은 아는 어른이 됐을 것이다. 3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비관적인 상황을 이겨낸 낙관의 힘이 놀랍고, 닮고 싶다. 선생님의 꿈이 나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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