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입원으로 보낸 여름
MRA 엠버서더가 되다
7월 초에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다. 작년에 대장내시경도 받아서, 올해는 훨씬 편하게 건강검진을 하고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건강검진센터에서 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5mm 정도의 뇌동맥류 의심소견이 있다고, 상급병원에 빠르게 외래를 보라는 이야기였다. 검진하고 돌아온지 1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뇌동맥류는 뇌혈관이 부풀어 꽈리 모양이 되는 건데, 비파열성과 파열성으로 나뉜다. 파열이 되면 우리가 아는 뇌출혈, 뇌경색 등이 오고 사실상 제대로 기능하며 살아가기 어렵다. 다만 비파열성은 미리 시술이나 수술을 할 수 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추가 금액을 내고 MRA(Magnetic Resonance Angiography, 자기공명 혈관조영술, 자기장과 고주파를 이용해 인체 특정 부위의 혈관 상태와 혈류를 3차원으로 촬영하는 정밀 영상 검사)를 찍어본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비교적 차분했다.
동생은 10 년 전 쯤 20대 초반에 군대에서 우연히 비파열성 뇌동맥류를 발견해서 코일색전술이라는 시술을 했다. 당시 병원에서 가족력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서 가족 모두 CT를 찍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CT로는 자세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늘 마음 한 편이 찝찝했고, 왜인지 올해 갑자기 뇌 MRA를 건강검진에 추가했다. 정말 우연히, 감사히 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 부랴부랴 부모님도 검사를 했지만 두 분 다 깨끗했다. 어떻게 동생과 내가 둘 다 있는 걸까? 드문 일인 줄 알았는데, 뇌동맥류는 100명 중 5명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이후 나는 MRA 엠버서더가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다들 꼭 MRA를 찍어보면 좋겠다.
먼저 가장 가까운 상급 병원인 순천향 병원으로 외래를 갔다. 의사선생님을 생각보다 빠르게 만났고 별다른 이야기 없이 자세히 확인하려면 '뇌혈관조영술'이라는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검사 입원을 예약했다. 평소 너무 많은 정보를 찾아보다가 겁을 먹는 자신을 잘 알고 있어서 예약 후에는 오히려 아무런 정보를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검사를 받기 이틀 전 밤.. 급 긴장이 되어 누워서 결국 검색을 하게 됐고, 사람들이 뇌동맥류를 발견하면 최소 외래를 3-4 곳을 가고, 명의니 빅5니.. 여러 노력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너무 아무 준비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친한 친구가 아무래도 뇌니까 3차 병원을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급하게 순천향병원 입원을 취소하고 외래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소견서를 다시 받고 하는 게 정말 복잡스럽고 스트레스였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건강검진센터에서 소견서를 여러 장 미리 받아두는 게 좋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
원래 일정대로라면 7월 말에 바로 검사 후 8월 초에는 수술이나 시술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전반적으로 일정이 밀렸다. 엄마가 내 얘기를 듣더니 회사에 있는 나대신 급히 예약을 해주시느라 고생이 많았다. 나는 다시 천천히 알아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일정이 늦어지는게 무척 신경이 쓰이셨던 것 같다. 인터넷도 잘 못하시는데 전화로 여러 큰 병원과 유명하다는 교수님들을 알아봐주셨다. 나는 왠지 서울성모병원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서울성모병원 조우철 교수님께 가게 됐다.
조우철 교수님은 외래에서 뵀을 때부터 수술 후까지 정말 감사하고 유능하고 멋진 분이다. 꼭 필요한 이야기만 정확하고 짧게 얘기해주시는데 신기하게 다정하게 느껴진다. 외래에서는 가장 먼저 내가 왜 MRA를 찍었는지부터 물어보셨고, 동생 이야기를 했는데 가족력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 해주셨다. 가족력이려면 신장질환도 같이 생기는데(특정 DNA 단백질 같은 게 문제가 생겨서 같이 생기는 거라고 알고 있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냥 정말 둘 다 천운으로 알게 된 거나 다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건강검진센터에서 보내준 MRA CD로 거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셨고, 시술과 수술 중 확률상 어떤 걸 하게 될 지, 심지어 검사 스케쥴도 직접 확인해서 정리해주시는 등 아주 자세하고 명료하게 설명해주셨다. 여전히 아산병원 예약이 있어서 가보고 결정하자던 엄마도 마음을 놓으셨고, 남편도 교수님을 무척 신뢰하게 됐다. 검사는 오전 언제쯤 할 것이고, 이후 본인이 몇 시쯤 와서 설명해줄 것이고.. 같은 세세한 스케쥴까지 이야기 해주셔서 나같은 J에게는 정말 너무 안심이 되었다.
아무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 치료였지만 모든 과정이 안심되고 편안했다.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도움을 줄 때
이 외래 후 검사까지는 마음이 조금 힘들었다. 발견했다는 감사함과 시술이나 수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좋은 교수님을 만나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수술대에 올라가는 것 자체의 두려움이 오락가락 했다.
이 시기에 크게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일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거의 이 시기는 일 덕분에 잘 버텼다. 일에 몰입을 하다보면 두려움이나 고민을 잊을 수 있었고, 지하철을 타고 병원이 아닌 사무실로 가는 일상이 이어짐에 소소하게 감사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지내면 환기도 되고 에너지도 얻었다.
또 동료들에게 말하는 과정도 예상치 못하게 도움이 됐다. 회사에서 나는 크게 두 팀을 맡고 있는데, 병원을 옮기기 전까지는 팀원들에게 동요를 줄까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병원을 옮기면서 각 팀에 공식적으로 말하게 됐다. 말하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진 않을까, 걱정을 끼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말하기가 저어됐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무 말없이 혼자 다 마무리하고 뿅 나타나야지라는 마음은 무척 외로울 뿐 아니라, 한편으론 이기적이기도 했다. 팀원들 입장에서는 솔직하게 내 상태를 공유받지 못하는 것이고, 또 팀원들도 아픈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럴 때 이런 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내게 말을 못하거나 한다면 좋은 경험이 아닐 것 같았다.
이런 생각에 다다라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당연하지만 다들 잘 받아들였고 오히려 내가 많은 애정과 도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 팀원들을 내가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 이것의 실천 자체가 내 정신적인 측면에 도움을 주었다.
내가 어떤 상태-질병, 아픈 상태 등-든 나를 똑같이 대해주고, 일도 같이 열심히 하고, 애정을 베풀어주는 많은 분들이 있었다. 일과 일터,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 깊이 감사했다. 일이 아픈 나를 도와준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경험이라 기록해둔다.
검사 입원
비파열성 뇌동맥류를 발견했다면 시술/수술 방법 결정을 위해서든 MRA로 보지 못한 추가적인 뇌동맥류 등 다른 뇌혈관 문제가 있는지 자세히 보기 위해 '뇌혈관조영술'이라는 검사를 해야 한다(참고).뇌혈관조영술은 사타구니의 대퇴동맥을 통해 조영제를 뇌혈관까지 쏴서 아주 자세히 뇌혈관을 볼 수 있는 기술이다. 동생도 이렇게 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냥 정말 의학 기술이 대단하구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열지 않고도 머릿속을 자세히 볼 수 있다니.. 사타구니에서부터 머리를 볼 수 있게 된다니..^^
검사하러 입원하는 날에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는데, 막상 입원을 하니 괜찮았다. 나는 2인실에 있었는데, 옆자리에 오신 분들마다 내 또래 여성분들이었고 나보다 훨씬 아픈 상황에서도 기운내어 지내고 계셔서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수녀님이 방문하시면서 기도를 해주시는 것도 참 좋고 감사했다.
입원 첫 날은 몇 가지 검사 및 금식 후 다음 날 오전에 검사를 하는 일정이라 별다른 게 없는데도 교수님이 갑자기 컨디션 체크를 하고 가셔서 감동했다. 검사 자체는 아마도 뇌혈관조영술만 전문으로 하시는 다른 선생님이 하시고, 조영술 결과를 보고 교수님이 와서 어떻게 하게 될 지 알려주시는 방식이다.
다음 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언제든 검사를 하러갈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생각보다 늦은 11시에 들어가게 됐다. 처음으로 수술방에 들어가는 거라 긴장이 됐는데, 막상 방안은 정말 일사분란하고 전문적으로 느껴져서 마치 사무실처럼(사실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선생님들의 사무실이 맞지만..) 느껴졌다. 나 한명 때문에 고생하시는 수많은 분들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시키는 대로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처음에 사타구니 마취는 적당히 뻐근했던 것 같고, 조영제가 들어가면서 온몸이 이상하게 떨렸고, 슬프거나 무섭지 않은데 눈물이 났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조영제가 차가운데 혈관에 바로 들어가서, 그리고 신경계가 자극되어 그런가 싶었다.
사타구니 국소 마취를 한 부위에 카테터(가느다란 관)를 넣어서 올라가는데 처음 시작 때는 너무 그 관이 느껴져서 살짝 힘들었다. 한 번씩 숨을 참고 눈을 감은 채 조영제가 쏴질 때 뇌 혈관 촬영 같은 걸 하는데, 눈에서 가느다란 번개 같은 게 번쩍거린다. 그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보다는 의사선생님이 카테터를 움직이는 팔의 움직임을 보는 게 힘들어서 눈을 감고 있었다. 검사는 금방 마쳤고, 무거운 나를 다시 이동 침대로 옮겨주셨다.
대퇴동맥을 뚫은 것이기 때문에 지혈을 위해 4시간 정도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몸도 일으키지 않고 곧게 펴고 누워있어야 했다. 이때 1시간 쯤 지내니 몸이 너무 아팠다. 누워있는 건 전문이지~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혈액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인지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 사람 몸은 적당히 움직이라고 만들어져 있는 것이라는 걸 또 느끼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너무도 감사하고 좋은 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병실로 이동해 누워있으니 교수님이 오셨고, 외래 때 MRA 보고 예상하신 위치에 정확히 뇌동맥류가 있었다. 위치나 상황상 시술을 하면 되는 거라서 개두술이라는 부담은 덜었다. 2주 뒤에 다시 입원해서 사타구니를 통한 코일색전술을 하면 된다고 했다.

재입원과 시술
2주가 지나 다시 입원을 해서 시술을 준비했다. 지난 번 온몸이 배겼던 것과 불편한 베개, 이불 경험 때문에 이번에는 덮던 이불과 쓰던 베개까지 챙겨갔다. 심지어 애착 수건도 챙겨감.. ^^; 근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정말로 훨씬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이번에도 첫 날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서 긴장없이 있었는데, 갑자기 동맥주사로 채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게 천식이 있어서 산소포화도를 확인하기 위해 피를 뽑아 내과에 보내서 확인하는 철저한 과정이었다. 나중에 들었을 때는 감동했으나.. 그 과정은 정말 끔찍했다. 조금 아플 거라고 하셨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지르고 거의 기절했다. 인생에서 겪은 고통 3위 안에 들었다.. 나만 이렇게 아픈가요..? 손목 어딘가를 찌르셨는데 피가 갑자기 나가서인지 놀라서인지.. 갑자기 저혈압이 너무 심하게 와서 급하게 누웠다. 다리를 올리고 누우니 곧 괜찮아졌다. 근데 정말 그 동맥주사의 아픔은..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제일 아픈 부위가 시술 부위가 아니라 동맥주사 부위다;

다음 날에는 시술 후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하루 있어야 해서 미리 씻고 잤다. 오후에 시술을 하게 된다고 해서 오전에는 좀 늦게 일어나서 중환자실에 들어갈 짐을 싸고(중환자실은 보호자가 하루 1회 면회 외에는 들어갈 수 없고 휴대폰 등 반입이 안된다), 하루 이상 움직이지 못할 거 같아 검사 때 움직이지 못해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며 걷고 까치발 들며 다리 운동을 좀 했다.
이번에 수술방에 들어갈 때도 조금 긴장이 됐다가 막상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괜찮았다. 교수님이 와서 인사해 주셨고, 간호사선생님들이 이것저것 확인하셨다. 수술방에 들어가서는 속전속결이었다. 잠에 들고 깰 때 숨을 크게 쉬라고 하셨고, 마취제가 들어가는 게 느껴지며 바로 잠들었다. 시술 자체는 30-40분 정도였고 앞뒤 처치와 깨어나는 시간 합쳐서 2시간 정도 걸린 거 같다.
전신마취를 하는 시술이라 기도 삽관을 해서 인공호흡을 하다보니 깨고나서는 스스로 호흡하기 위해 다시 숨을 크게 쉬어야 한다. 근데 눈을 떠보니 숨이 너무 안쉬어지고 가래 같은 이물질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꽤 힘들었다. 기침을 엄청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와중에도 목에 있는 거 뱉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뱉었다.. 많은 의료진 분들이 나를 보고 있었고 어느 순간 베드가 이동하고 있었다. 시술은 잘 됐다고 했다.
중환자실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숨쉬기가 힘들고 기침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들어보니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기침을 많이 했는지 아직도 복근이 아프다. 처음에 산소포화도가 낮아서 숨을 크게 쉬라고 해서 너무 또 열심히 쉬었다가 이산화탄소가 많아져서 그런지 온몸에 쥐가나고 저려서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고 괜찮아졌다. 천식이 있어서 처음에 숨쉬는게 힘들었나보다. 아무튼 본능적으로 숨이 잘 안쉬어지니까 무서웠지만 이것조차 동맥주사보단 덜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두 번이나 교수님이 중환자실에 왔다 가셔서 그것도 감사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는 세 분의 간호사선생님이 정말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셨다. 추우면 따뜻하게 해주시고, 필요한 물건도 계속 가져다 주시고, 시간마다 혈압 등을 재주시고, 오줌도 비워주시고.. 참, 걱정했던 생각보다 소변줄은 많이 힘들진 않았다. 마렵지가 않은데 계속 소변이 나간다는 것이 신기했고 편하기까지 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의식이 또렷하게 느껴지고 컨디션도 괜찮아서 그냥 본능적으로 수술이 잘 됐다는 걸 느꼈다. 휴대폰이 없어서 가지고 들어간 새 책 1권도 다 읽어버릴 정도였다. 다만 다음 날 오전에 여러가지로 좀 힘들었다. 손에 발진 같은게 살짝 올라오기도 했고, 손목 저림, 갑자기 동맥주사 자리 통증이 너무 심한 등등.. 또 침대 위에서만 하루를 보내니까 몸을 충분히 움직이지 못하니 힘들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오면서는 아무리 옆에서 도와주고 돌봐준다고 해도 사람이 제 힘으로 자신을 추스리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이 또렷해도 힘든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안락사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그래도 잘 있다가 일반 병실로 넘어갔다. 중환자실에서 돌봐주신 간호사선생님들이 정말 너무 감사해서 마지막에는 눈물까지 나왔다.. 너무 친절하고 프로답고 헌신적인 분들이었다.
마지막 날은 토요일이라 교수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문제 없이 잘 마무리 되어 한 달 뒤 외래 때 뵙기로 했다.
이 기간 내내 엄마와 남편이 많은 고생을 했다. 특히 엄마는 결정적으로 조우철 교수님을 만나게 해주었고, 나이도 있으신데 검사입원 때 불편한 간병인 침대에서 잠을 자고 계속 걱정하며 나를 곁에서 지켜줬다. 남편은 늘 그렇듯 나의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오히려 밝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꼼꼼하게 여러가지를 챙겨준 덕분에 몸 회복만 잘 챙길 수 있었다. 퇴근하고 두번이나 왔다간 동생에게도 고마웠다.


서울성모병원 로비의 가장 중심에 성모상과 성당이 있다. 나는 양가 부모님이 모두 천주교 신자이고 친한 친구들 중에도 신자가 많다. 중학교 때는 천주교 미션스쿨을 다녀서 마음이 가까웠다. 이번 기회에 더 가깝게 느껴져서, 수술을 마친 뒤 밤에 성당에 들렀다. 성당이 아늑하고 아름다웠다. 서울성모병원 개원을 앞두고 필사를 했다는 성경필사본을 보면서 병원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여름의 마무리
생각보다 나에게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경험이었다. 늘 멀리서 접하다가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외과 의사선생님들/간호사선생님들에 대한 존경, 경외가 먼저 들었다. 비물질적인 IT 분야에서 늘 머리로만 일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내게 사람의 삶이, 몸이 정말 얼마나 물리적으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했다면 의사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나댔을 것 같다. 겁이 많아 못했겠지만.. 아무튼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는 사람의 삶을 고쳐낸다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느꼈다. 힘드시겠지만 자부심도 있으시겠지? 꼭 자부심을 가지고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죽다 살아난 수준이 아닌데도 정말 감사하다.

응급도 아닌 나를 위해 수많은 의료진이 헌신해주신다는 것, 이런 의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 건강보험, 사람의 몸은 정말 연약하고 또 빠르게 회복한다는 것, 엄청나게 체계적인 병원 시스템과 의료 기술에 대한 놀라움, 든든히 나를 지켜준 가족의 존재, 응원해준 친구들, 일에 대한 감사함 등..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느끼는 경험이었다.
쉽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덕분에 삶에 감사하고, 몸에 더 건강하게 집중하며 살 수 있을 거 같아 기록을 남겨둔다.
